| 국사편찬위원회,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소장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관련 미국 국무부 기밀문서 수집 및 최초 공개 |
|---|
|
|
알림
보도시점: 즉시 보도 가능 · 배포일자: 2025. 8. 18.
1980년 12월 6일 전두환 대통령과의 회합은 느긋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나(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는 해럴드 브라운 국방장관이 12월 13일 한국을 잠시 방문하려 한다고 전한 후 김대중의 사면을 정중히 요청하는 1980년 12월 1일자로 된 카터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 나는 또한 의원들 및 차기 행정부 관련 인사들 등 워싱턴에서 내가 만났던 사람들과의 대화 내용도 전했다. 나는 카터 대통령의 친서는 김대중 문제에 관심이 많은 미국 인사들의 의사를 반영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공화당과 민주당 인사들의 생각이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들 모두 김대중 사형 집행은 한국의 대외 이미지를 극도로 손상시키며 미국의 대한정책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크게 우려하고 있었다. - 윌리엄 글라이스틴, 『알려지지 않은 역사』 중에서 — 윌리엄 글라이스틴, 『알려지지 않은 역사』 중에서 국사편찬위원회,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소장최초 공개—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를 맞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및 ‘5․18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자료 공개 — ○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허동현)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를 맞아, 1980년 신군부가 조작했던 ‘김대중 내란음모사건’과 관련하여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이하 ‘NARA’)이 최초로 기밀 해제한 미 국무부 문서를 수집, 공개한다고 18일 밝혔다. ○ 국사편찬위원회는 미국 NARA가 지난 2024년 12월 5일 기밀해제하여 공개한 ‘5․18광주민주화운동 및 김대중 재판 관련 기록’ 2박스(3,150장)에 대해서 면밀한 검토를 끝내고 수집을 완료하였다. 미 국무부 산하 ‘인권 및 인도주의국(Bureau of Human Rights and Humanitarian Affairs, HA)’에서 작성하거나 보관한 사료는 1980년 한국 주재 미국대사관이 국무부로 보낸 전문(電文)을 비롯해서, 국무부가 미국대사관으로 보내는 전문, 국무부 내부 문건 그리고 미국 내 언론 혹은 시민단체의 광주 관련 보도와 서한 등 여러 가지 문서로 구성되어 있다. □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 1979년 12·12 군사 반란으로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당시 야당 지도자인 김대중을 비롯한 정치인, 학생운동 지도자들을 무더기로 체포했다. 1980년 7월 4일 계엄사령부는 “김대중과 추종분자 일당들이 국민연합을 주축, 전위세력으로 하여 방대한 사조직을 형성”, “유혈 혁명사태를 유발, 현 정부를 폭력으로 전복․타도한 후 김대중을 수반으로 하는 과도정권을 수립 집권하려는 내란음모 행위”를 했다고 조작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 김대중은 1980년 7월 31일 신군부 합동수사본부에 의해 내란음모 및 반국가단체 구성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되었으며, 같은 해 9월 17일 육군본부 계엄보통군법회의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11월 3일 항소심(계엄고등군법회의)에서도 사형이 유지되었고, 1981년 1월 23일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면서 사형이 확정되었다. 그러나 다음 날인 1월 24일, 미국 등 국제사회의 강력한 압력을 받은 전두환은 김대중의 형을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이후 1982년 12월 23일 김대중은 건강 악화를 이유로 형집행정지 처분을 받고 미국으로 출국해 약 2년간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85년 귀국했다. ○ 이 사건은 한·미 관계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미국은 김대중 사형 집행이 양국의 안보와 경제 협력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면서 한국 정부에 감형을 촉구했으며, 전두환은 법원의 판결 존중을 내세우면서도 동맹국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해 대법원 사형 확정판결이 나자 미국의 압력을 수용했다. □ 김대중 사형 철회를 전두환에게 요구한 카터 대통령의 서한 초고 ○ 1980년 12월 6일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미대사는 카터 대통령의 친서를 전두환에게 직접 전달했다. 이번에 국사편찬위원회가 최초 공개한 자료 속에는 전두환이 카터 대통령에게 1980년 11월 10일 보낸 서한과 이에 대한 카터 대통령의 답신 초안이 포함되어 있다. 카터 대통령의 답신안은 12월 6일 전두환에게 전달된 친서의 초고로 보인다. ○ 이 편지에서 카터 대통령은 김대중에 대한 사형 집행 여부가 한·미 관계의 기초를 심각하게 위협할 것임을 경고했다. 미국 내 여론과 의회의 강한 반대, 국제적 비난 가능성을 지적하며, 형을 감형하거나 취소하는 것이 전두환의 지도력을 강화하고 미·한 관계 개선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내부 검토 과정에서 인권·인도주의국(HA)은 ‘김대중 사형만 막아도 양국 관계 개선’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표현을 수정하자고 주장했고, 동아시아·태평양국(EA)은 현실적 효과를 위해 해당 표현을 유지해야 한다고 맞섰다. ○ 이 자료는 미국이 김대중 사형 집행 방지를 외교 현안의 최우선 과제로 인식했음을 보여주며, 인권 가치와 전략적 이해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미국 정부 내부의 정책 조율 과정을 드러낸다. 또한 전두환이 직면한 외교적 압박의 강도와 범위를 보여주는 핵심 사료다. □ 미국의 재판 참관 보고서: 명백한 불공정성 지적 ○ 이번에 공개되는 문서 중에서 주목되는 자료는 미 국무부 법률고문실이 작성한 김대중 재판 참관 보고서이다. 1980년 12월 22일 작성된 56페이지 분량의 이 보고서에는 ‘김대중 재판’에 대한 미국 측의 참관기록이 상세히 담겨있으며, 체포에서부터 재판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가 제3자적 관점에서 기록되어 있다. ○ 한국 정부가 국제법률가위원회(ICJ)나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등 비정부기구의 재판 참관을 거부하자, 미국 국무부는 법률고문실 소속 변호사 제프리 스미스(Jeffrey Smith)를 재판 참관인으로 파견했다. 스미스는 1980년 8월 24일부터 9월 18일까지 서울에 머물며 재판 과정을 직접 지켜보고 관련자들을 인터뷰했다. ○ 보고서는 김대중이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김대중과 공동 피고인 23명은 영장 없이 체포되어 85일간 외부와 접촉이 차단된 채 구금되었으며, 변호사 선임과 가족 접견, 혐의 통보 등 기본적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다. 구금 기간 중 다수 피고인은 구타와 부당대우를 받았고, 강요에 의해 비자발적 진술서에 서명했다고 진술했다. 변호인 상당수가 체포되거나 위협을 당해 변호권이 심각하게 침해되었으며, 유죄 판결의 근거는 대부분 피고인의 자백과 언론 보도에 의존했고 실질적인 물적 증거는 결여되었다. 보고서는 또한 김대중의 활동이 계엄 해제와 자유선거 촉구 등 민주국가에서 처벌 대상이 될 수 없는 합법적 정치 활동이었다고 명시했다. □ 김대중 사형 문제에 대한 한·미 간 입장 차이 ○ 미국은 김대중 사형 집행이 한·미 관계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판단해 감형을 지속적으로 촉구했다. 미국 고위 관리들은 그의 정치 활동이 민주국가에서 정당한 행위임을 강조하며, 사형 집행이 국제 여론의 악화와 미 의회의 반발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전두환은 “법원의 판결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원칙 아래 법원이 사형을 확정하면 집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 한미 간의 입장 차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자료 역시 이번 수집 자료에 포함되어 있다. 1980년 11월 18일 백악관에서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 미국 국가안보 담당 대통령 특별 보좌관과 김경원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이 만나 대화를 나눈 회의록이다. 브레진스키는 김경원에게 “김대중 사건의 결과는 범죄에 대한 판결이 아닌 정치적 판결로 인식되어 한국에 대한 국제적 평판이 심각하게 손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일 김대중 사형이 집행된다면 미국의 한국에 대한 지원이 약화될 것이라고 했고, 한미관계에 구체적으로 어떤 피해가 있을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그 피해는 “사소한 것 이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김경원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 사건이 복잡하고 민감하며, 전두환 대통령이 어떻게 할지 예측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는 “한국군이 김대중을 처형하도록 대통령에게 강한 압력을 가하고 있으며, 대통령이 결정을 내릴 때 이 압력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브레진스키는 한국이 김대중 사건을 “벼랑 끝 상황(cliff hanger)”으로 몰아가지 않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고 했고, 이 사건이 “승자가 없는 상황(no-win)”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가능한 한 빨리 해결되도록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김경원에게 카터 행정부를 이을 차기 레이건 행정부도 김대중 사건에 대해 매우 유사하게 느끼고 있다며, 김대중의 운명에 대해 미국과 일본이 매우 우려하고 있다는 자신의 견해를 전두환에게 전달해 줄 것을 요청했다. □ 재심과 무죄 판결 ○ 2004년 1월 29일, 서울고등법원은 재심을 통해 ‘내란음모’ 및 ‘계엄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당시 김대중의 행위가 신군부의 헌정 파괴에 맞선 정당한 정치 활동이었다고 판단했으며, 국가보안법 위반 등 일부 혐의에 대해서는 공소시효 만료로 면소 판결을 내렸다. □ 광주학살에 대한 일본가톨릭정의평화협의회 보고서 ○ 한편 국사편찬위원회가 이번에 미국 NARA에서 발굴한 미 국무부 자료 중에는 5․18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자료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국에서는 한국의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전담하는 모니터링팀을 구성하여 광주 관련 보고서를 작성하여 국무부를 비롯해서 국방부와 CIA 등 33개 기관에 회람시켰다. 미 국무부 보고자료 외에도 일본 등의 국제 민간기구들이 보낸 광주민주화운동 자료, 뉴욕타임즈,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한 미국 내 언론에서 보도된 광주 관련 기사들도 담겨있다. ○ 5․18광주민주화운동 자료 중에는 1980년 8월 일본가톨릭정의평화협의회가 발행한 '광주에서 발생한 최근 사건에 관한 문서'라는 제목의 보고서가 주목된다. 이 보고서는 1980년 5월 19일부터 24일까지 광주에서 벌어진 사태를 직접 목격한 한 증언자의 기록을 중심으로 작성되었으며, 광주 현장의 참혹한 실상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이 보고서는 “한국 군인들의 무절제한 야만성”에서 비롯된 “대량 학살과 암살”이라고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압을 정의하고 있다. 보고서에는 계엄군이 광주 시민과 학생들을 무차별적으로 진압하는 잔혹 행위들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 미국 기밀 문서 해제 과정 그 의미 ○ 새롭게 빛을 보게 된 미국 문서들은 오랫동안 국사편찬위원회와 함께 한국 관련 현대사 사료를 발굴하는 작업을 진행해 온 독립연구자 윤미숙 선생의 노력 덕분이었다. 지난 2001년부터 NARA에서 방선주 박사와 함께 한국사 관련 사료들을 수집해 오고 있는 윤미숙 씨는 “지난 2022년 인권 및 인도주의국 관련 사료들이 기밀해제 되지 않고 창고에 잠자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곧바로 기밀해제를 신청했고 3년 만에 기밀이 해제되어 일반에 공개되었다”라고 그간의 경위를 밝혔다. ○ 이번 자료 공개의 의미에 대해 이화여대 정병준 교수는 “1990년대 중반 미국 언론인 팀 셔록(Tim Shorrock)에 의해 5.18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미국의 기밀문서 체로키파일이 공개되었지만,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들은 한국 연구자가 정보자유법(FOIA: Freedom of Information Act)에 따라 미국 NARA에 기밀해제를 요청해 공개한 5․18광주민주화운동 및 김대중 재판 관련 기록으로는 최초의 사례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기밀해제 신청을 하면 통상 신청서를 받았다는 통보를 받는 데에만 수개월이 걸리고, 실제로 문서가 공개되기까지는 수년이 걸리며, 공개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때문에 이번에 공개된 자료에는 윤미숙 선생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빛을 발했다. 1970년대 이후 시기의 상당수 문서들이 공개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노력이 지속되면 새로운 문서가 발굴되고 역사의 진실에 접근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 자료 공개 및 그 의미 ○ 5․18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미국 사료들은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국내 여러 기관의 요청에 따라 공개된 바 있는데, 5.18민주화운동기록관 간행 자료(518archives.go.kr)와 미 국무부 정보공개법(FOIA) 목록(foia.state.gov) 그리고 팀 셔록이 공개한 국무부를 비롯한 미 정부내부 기밀문서 자료를 참조할 수 있다. ○ 이번에 국사편찬위원회가 공개하는 자료는 1980년 미국무부 인권 및 인도주의국에서 생산했거나 관리했던 한국 관련 문서들로 새롭게 발굴된 것이다. 이 자료들은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archive.history.go.kr) 누리집을 통해 문서 원문을 누구나 직접 확인할 수 있다. ○ 국사편찬위원회 허동현 위원장은 “이번 자료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대해 당시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어떤 인식을 가졌는지와, 내부에서 어떤 정책 논의가 오갔는지를 보여주는 사료”라며, “재판의 불공정성을 국제적으로 재확인하고, 한국 현대사 연구와 민주주의 가치 확산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
| 첨부파일 |